무언가를 꽤 주의 깊게 모으다 보면, 수집에도 슬슬 자기 자신만의 기준이 생기는 법. 저지를 모으는 레플러들에게도 각자의 수집 ‘포인트’ 가 있을 것으로 예상 된다. 브랜드 로고, 스폰서, 선수 마킹, 각종 패치, MDT까지! 우리를 설레게 하는 저지의 포인트들 중에서도 이번 기획 기사에서 다뤄볼 디테일은, 저지 특유의 찰랑임을 돋보이게 해주는 그것. 바로 *’족택(JOCK TAG)’ 되시겠다. 오늘 ‘족택탐구생활’에서는 여전히 레플러들을 설레게 하는 족택의 소재, 디자인, 역할과 그 변천사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JOCK TAG’은 운동선수를 지칭하는 ‘JOCK’에 TAG가 합성된 단어로 운동선수 표식이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축구뿐 아니라 특히 농구, 하키 등의 스포츠 저지에 브랜드, 등급, 사이즈 등이 표기된 의류 하단의 포인트 라벨을 지칭한다. 족택에는 구단 또는 선수에 대한 다양한 역사가 포함되기도 하기 때문에 개인에 따라 수집할 저지를 선정하는 데에 꽤나 신경 쓰일 디테일이라고. 원어민 발음에 가깝게 하자면 작-택이 되겠지만, 족택이 발음이 더 감기기 때문에 본문에는 족택으로 표기하고자 한다.
족택의 과거
ARGENTINA 1998-00 HOME
1990년대 후반 아디다스가 보여준 가장 일반적인 축구 저지 족택의 형식. 별도의 패치로 제작되었고, 자수 형태로 부착되었다. 유니폼에도 적용된 아르헨티나 국기 컬러 조합이 인상적. AFA(Argentina football association)의 공식 마크와 OFFICIAL GARMENT(공식 의류) 라는 문구를 통해 공식적으로 라이센스를 취득한 정품 제품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족택의 매우 전통적인 역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NEWCASTLE UNITED 1999-00 HOME
1990년대 후반 아디다스의 클럽 유니폼에는 이런 족택이 붙었다. 앞서 소개한 아르헨티나 저지와 마찬가지로, 유니폼의 디자인을 딴 패치에 구단 마크가 새겨져 있고 브랜드명과 OFFICIAL REPLICA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8-90년대는 대 레플리카의 시대. 다시 말해 구단이나 브랜드의 공식적인 라이센스 취득 없는 모조품들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족택은 이러한 모조품들의 범람 사이에서, 소비자들을 ‘공식’ 복제품으로 인도하는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해줬다고 할 수 있다.
INTER MILAN 1999-00 HOME
1990년대 후반 인테르의 저지에는 나이키의 가장 범용적인 족택이 달렸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나이키가 메인 스폰서를 담당하는 많은 팀의 저지에는 종목과 상관없이 위와 같은 족택이 부착되었다. 이 족택의 특징은 크고 명확한 사이즈 표기.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실용성의 측면에선 높은 점수를 받을만하다. 다만 앞서 소개한 각 팀의 특징을 녹여낸 아디다스의 족택에 비해선 디테일이 아쉽다. 족택만 봐서는 이게 농구 저지인지, 하키 저지인지, 축구 저지인지 알 수가 없다는 나이키의 함정,,, ‘Engineered to the exact specifications of championship athletes’ 라는 문구에서는, 자신 브랜드 제품뿐 아니라 후원하는 선수와 팀에 대한 자부심도 함께 느껴진다.
JUVENTUS 2000-01 HOME
2000년대 초반의 족택도 1990년대 후반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이탈리아의 (한때) 국민브랜드인 LOTTO의 유벤투스 족택은 그 디자인과 디테일 면에서 족택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고. 아직 별 두 개 시절이던 유벤투스의 구단 마크와, 브랜드 로고, OFFICIAL GARMENT 라는 문구도 모자라 ‘registered trademarks’ (등록 상표) 까지 정성들여 적어 넣었다. 이 정도 퀄리티의 족택이라면, 저지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위상 모두 높아지는 편. 놓치기 쉬운 밑단의 디테일까지 신경 쓴 로또의 세심함이 새삼 느껴진다.
SWEDEN 2000-02 HOME
시기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1990년대 후반과는 달라진 2000년대 초반 아디다스의 족택. 그 흔적이 스웨덴 국가대표 저지에도 담겨있다. 1990년대 후반엔 구단 마크와 함께 세로로 긴 직사각형이 특징이었다면, 2000년대 초반엔 가로로 긴 문구 중심의 직사각형으로 개편되었다. 팀 표식은 구단 마크에서 ‘SFF’*(Svenska FotbollFörbundet) 와 같이 간단한 세 글자 약어로 바뀌었고, ‘AUTHENTIC LICENSED PRODUCT’ 라는 문구가 추가 되면서 디테일을 빼고 ‘진정성’ 정도가 더해졌다. 많은 축구팬들이 알다시피 여기서 어센틱이라는 표현은 선수용이라는 표식은 아니니 주의하자. ‘인증된’ 정도의 본래 의미로 쓰였다.
* Svenska FotbollFörbundet – 스웨덴어로 ‘스웨덴 축구협회’이다. 반전은 없다.
RIVER PLATE 2006-08 HOME
2000년대 중반 발매한 아디다스 저지에 빠지지 않았던 족택. 시기를 함께한 몇 개의 영광의 저지와 함께 상징적인 족택으로 남은 팀가이스트 홀로그램 족택이다. 2006 독일 월드컵의 공인구인 팀가이스트의 특징적인 디자인이 담긴 홀로그램택으로 빛에 따라 팀가이스트와 아디다스 삼선 로고, ‘AUTHENTIC LICENSED FOOTBALL PRODUCT’가 교차한다. 기존의 섬유패치와는 다르게 자수가 아닌 열부착방식을 택한 것까지. 앞서 소개한 족택들과는 많은 큰 차이점을 보인다. 이때부턴 아디다스에서도 족택에 각 팀만의 특징을 담는 것을 포기(?!?)하고, 공식 제품인 것을 인증하는 기능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INTER MILAN 2007-08 HOME
족택의 기능, 의의를 설명할 때 기념 저지가 빠질 수 없다. 인터밀란의 구단 창립 100주년 기념 저지는 아름다운 디자인만큼이나 마무리인 족택의 심미적, 기능적 역할 모두 훌륭하다. 구단 마크와 함께, 특기할만한 사항을 족택에 표현하고 있다. ‘STADIO GIUSEPPE MEAZZA’ 는 인터밀란의 홈구장 ‘산 시로’ 스타디움의 별칭으로, ‘GIUSEPPE MEAZZA’ 는 구단의 193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인터밀란의 상징적인 존재다. 인터밀란팬들에겐 ‘산 시로’ 보다 더 친숙한 이름으로, 자신들의 홈구장과, 선수, 구단에 대한 애정이 함께 담긴 애칭이라고 할 수 있겠다. ‘9 MARZO 1908’ 은 인테르가 창설된 1908년 3월 9일을 의미하고, ‘100 ANNI NERAZURRO’ 는 *네라주로 100주년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어 NERO(검정) – AZURRO(파랑)의 합성어로 인테르의 대표적인 유니폼 색상조합에서 나온 팬과 선수에 대한 애칭이다. 축구팬들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네라주리(NERAZURRI)’는 네라주로의 복수형이라는 TMI.
족택의 현재
ITALIA 2012-13 HOME
2010년대부터 족택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편의상 2010년대부터를 현재의 족택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마침 매우 현대적인 족택을 발견한 것은 덤. 바로 이탈리아 국가대표에 적용된 푸마의 QR코드 족택이다. 족택이 과거처럼 디자인적으로 특이점을 가진 다기보다는, 여전히 공식 제품임을 인증하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와중 QR코드가 추가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QR코드를 스캔해보았지만 찾을 수 없는 페이지로 연결이 된다는 아쉬운 소식. 패치에 새겨진 LOVE = Football 문양은, 축구가 가진 화합의 힘에 대한 푸마의 프로젝트로 2010 남아공 월드컵을 맞아 전개되었었다.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푸마가 이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이어갔기에, 2012년도 이탈리아 유니폼의 족택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BOCA JUNIORS 2014-15 HOME
나이키는 비교적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족택에 큰 힘을 들이지 않은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앞서 소개한 범용적이고 투박한 족택을 사용했고, 2010년대부터는 위 사진과 같은 작고 소중한 족택을 사용했다. 족택의 색깔을 통해 선수용은 금색, 일반용은 은색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 기능적 특징을 가지고 있고, 발매연도와 제품의 넘버링도 알 수가 있다. 작지만 나름의 실용적 특징은 다 갖춘 것. 선수용과 일반용에 동일한 디자인이 적용되는 바, 무게 절감 등을 고려해 그 크기가 작아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섬유 패치 + 자수 부착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인상적인 부분이다.
SL BENFICA 2017-18 HOME
한때 족택 디테일의 명가 아디다스마저 족택을 간소화하기 시작한 시기. 정품임을 인증하는 패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CLIMACOOL 이라는 소재 프린팅만 남았다. 족택 마니아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이 흐름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한때 족택이 함께 담당했던 기념의 의미는 별도의 자수 처리로 그 흔적을 대신하고 있다. 기념 자수는 벤피카의 레전드 에우제비오의 출생 75주년을 기념하는 것으로, ‘Eusébio O REI’ 는 영어로 ‘Eusébio The KIng’ 을 의미한다.
MANCHESTER UNITED 2017-18 AWAY
아디다스가 족택을 얼마나 간소화했는지 알 수 있는 저지. 소재 명칭인 CLIMACOOL 만 쓸쓸히 남아있다.
PSG x JORDAN 2018-19 3RD / UCL HOME
이렇게 보니 꾸준히 족택을 신경 쓰는 나이키 되시겠다. 잠깐 사이에 태세전환. 조던 브랜드는 네이마르와 PSG와의 콜라보를 통해 축구까지 그 범위를 넓혔는데, 축구 저지 족택으로는 원형 실루엣 열부착을 선택했다. 모기업인 나이키 또한 직사각형 패치와 함께, 최근 출시한 제품들에는 위 사진과 동일한 원형 실루엣 족택을 병행해서 사용 중이다. 직사각형 디자인의 구성 중 발매연도가 사라졌고 색깔로 선수용, 일반용 구분을 하는 것과 넘버링 등은 유지하였다. 2019-20 시즌부터는, NBA 저지에 적용중이었던 커넥트 시스템을 축구 저지에도 점차 확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커넥트 시스템은 나이키가 킷 스폰서를 맡고 있는 첼시FC까지 적용된 상황으로, 이러한 추세로 보아 나이키, 조던 저지에서 ‘족택의 역사’는 꾸준히 발전될 것으로 보인다.
DAEGU FC 2019 SPECIAL 3RD GOLDEN NIGHT PACK
K리그에도 족택을 활용하는 브랜드가 있다. 그렇다. 포워드이다. 포워드가 디자인한 대구FC 저지에는 족택의 활용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각 제품이 발매할 때마다 그 저지에 맞는 색깔의 족택이 활용되었는데, 그래서 이번에 발매한 써드킷에도 골드 컬러 포인트의 족택이 저지 밑단에 자리하게 되었다. 족택에 표시된 정보가 상당히 많은 편. 아이덴티티가 담긴 대구FC의 엠블럼과, 브랜드 로고 ‘WEAPON FOR DAEGU FC’ 라는 문구는 물론이고, ‘ON PITCH’를 통해 이 제품이 실제 경기용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등 상징성과 기능성을 함께 표현하려고 한 부분이 눈에 띈다. 간소화라는 트렌드와는 다르게 전통적인 족택의 역할을 추구하는 것은 아트디렉터이자 저지 컬렉터인 최호근 대표의 저지에 대한 소신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족택의 과거와 현재를 톺아보면서 섣불리는 미래까지도 살짝 건드려보았다. 사실 족택이란 단어 자체가 생소한 레플러들도 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필자 또한,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명칭을 이번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알게 되고 이 기사를 준비하면서 무궁무진한 족택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케이스. 최근 트렌드인 밑단이 심플한 저지도 매력 있긴 하지만, 확실히 클래식 저지를 구입하게 하는 그 동기에는 그 시절 특유의 화려함과 디테일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다시 한 번 눈여겨 볼 포인트가 늘어난 지금. ‘옷에 마무리는 족택이지’ 라고 외치기는 어려워도, 족택까지 눈여겨 볼 수 있는 선구안이 여러분들의 컬렉션에 신선함을 더하길 바래본다.
족택탐구생활 마침.
글 – 정인천 에디터 (@jeongincheon)
아트워크 디자인 – 임채현 에디터 (@somefeel1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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