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축구 선수들의 은퇴 이후 소망 중 하나로 꼽히는 축구 감독. 팬들에게도 구단에게도 스타플레이어가 스타 감독으로 자리 잡는 것만큼 행복한 스토리가 없다. 물론 어느 스포츠를 막론하고 ‘좋은 선수’ 가 ‘좋은 감독’으로의 직행 코스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선수 출신 감독은 흔하지만, 선수 출신 감독으로 성공을 한 사례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성공한 선수 출신 감독들의 떡잎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저지들을 소개한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PSG 2002-03 HOME
첫 번째 주인공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포체티노는 지난 2019년 11월 경질되기 전까지, 2015-16 시즌부터 5시즌간 토트넘을 EPL의 강팀으로 이끈 명감독이다. 포체티노는 현역 시절 중앙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선수 경력은 대부분 프리메라리가의 RCD 에스파뇰에서 보냈다. 에스파뇰에서만 무려 300경기를 보낸 프랜차이즈 스타.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이고 준수한 수비력을 보여줬으며, 이를 바탕으로 아르헨티나 A대표팀에 승선하기도 했었다. 감독 데뷔는 친정팀인 RCD에스파뇰에서 했으며, 36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당시 리그 최하위 팀인 에스파뇰을 10위까지 끌어올리는 저력을 보여주며, 명감독 커리어의 서막을 알렸다.
저지는 2002-03 시즌 파리생제르망. 포체티노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두 시즌간 파리의 중앙을 지켰다. 중위권을 전전하던 토트넘을 강호로 올려놓으면서 명장 반열에 오른 포체티노인지라 경질 이전부터 많은 빅클럽과의 링크가 보도 되곤 했었는데, 파리 생제르망도 그 중 하나. 감독으로서 포체티노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커리어 내내 따낸 우승컵이 없다는 점인데, 친정팀이자 빅클럽 파리로의 복귀는 그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일 거 같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든든한 구단주의 지원을 받으며 빅네임 선수 영입에 적극적인 감독 포체티노의 모습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감히 상상해본다.
지네딘 지단 REAL MADRID 2005-06 HOME
스타플레이어의 성공적인 스타 감독으로의 전환. 최고의 선수가 최고의 감독이 되는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현대 축구 역사에 미치는 지네딘 지단의 존재감의 그 크기와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다. 현역 시절부터 피치 위에서 뽐내던 남다른 포스를 여전히 벤치에서도 뽐내고 있는 지네딘 지단. 스타 선수들의 총집합 갈락티코 정책을 펼치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로 선수단 장악을 통해 팀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현재까지 매우 짧은 감독 커리어 동안,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3년 연속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실력도 운도 출중한 축구계 스타 중의 스타라고 할 수 있겠다.
저지는 2005-06 시즌 레알 마드리드. 많고 많은 지단의 저지 중 은퇴 시즌 저지를 골랐다. 이른 은퇴가 아쉽지 않을 만큼 선수로서 도달할 수 있는 모든 범위의 우승을 경험한 그는 당시까지의 커리어만으로도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 자리를 확실히 찜해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레전드는 달라도 확실히 다른 법. 독이 든 성배라고 할 수 있는 갈락티고 레알의 감독 대행 및 정식 감독을 맡더니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굵직한 획까지 그었다. 선수 은퇴 이후 줄곧 레알 마드리드와 연결되면서, 지단과 레알 마드리드를 떼어 놓을 수 없는 상황. 과연 감독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팀에선 어떤 감독적 역량을 보여줄 지는 미지수지만,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선수로서나 감독으로서나 모두 들어본 스페셜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사람 걱정은 아무래도 내가 할 건 아닌 거 같다.
유상철 KOREA 1998-00 HOME
선수시절 한국이 자랑하는 멀티 플레이어이자 2019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의 1부 리그 잔류를 이끈 유상철 감독. 유상철 감독은 날아라 슛돌이부터, 춘천 기계공고, 대전 시티즌, 울산대학교, 전남드래곤즈 등을 거치며 감독 경력을 쌓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천 유나이티드의 1부 리그 사수를 이끌게 되었다. 사실 그의 감독 커리어는 선수시절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은 편. 오죽하면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직에 선임되기 직전 ‘실패한 감독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게 두렵다.’ 라는 인터뷰를 했을 정도. 이번 시즌 다시 한 번 ‘실패’ 하지 않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시즌을 준비한 유상철 감독은 결국 인천 유나이티드의 ‘잔류왕’ 타이틀을 지켜내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시즌 말미 많은 축구팬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낯빛이 좋지 않은 정도로만 알았던 유상철 감독의 건강 이상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 팬들에게 인천의 1부 리그 잔류와 함께 병마와 싸워 이겨내겼다는 약속도 같이 한 만큼, 마지막 약속 또한 꼭 지켜내기를 기원한다.
1998-00 한국 국가대표 저지. 유상철은 선수 시절 첫 월드컵 경험이었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유일한 승점을 얻는 데에 일조했다. 문전 앞 과감한 슬라이딩으로 동점골을 넣으며 자신의 얼굴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렸는데, 이 대회에서의 활약이 알려지며 바르셀로나 입단 제의까지 받았었다고 한다. 유상철은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폴란드전 중거리슛을 꽂으며 인상적인 득점을 선보였다. 한국이 자랑하는 멀티플레이어 답게, 1998년 월드컵에선 윙백, 2002년 월드컵에선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2002년 월드컵에선 한 경기 안에서 미드필더와 중앙수비를 모두 오가는 등 발군의 실력 보여주는 등, 특유의 강인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어느 자리에서나 제 몫 이상을 해주었던 선수였다.
번외 – 답답해서 내가 뛴다.
헨릭 라르손 CELTIC 1999-00 HOME
‘선수들보다 감독이 더 잘하겠는데?’ , ‘ 답답하면 자기가 뛰는 거 아니야?’ . 왕년의 스타플레이어가 감독이 되는 경우 팬들에게서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말들이다. 소속팀 성적이 좋지 않다면 더 이상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는 않지만. 그런데 ‘답답해서 내가 뛴다.’를 진짜 실천한 스타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 아, 선수이면서 코치 역할을 겸하는 플레잉코치가 아니라, 정말 수석코치가 보다 못해 선수로 갑작스럽게 투입된 경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2000년대 셀틱의 전설 헨릭 라르손이다. 라르손은 2013년 자신이 선수로 데뷔한 스웨덴 4부 리그 소속 호가보리 BK에서 수석코치 보직을 맡게 되었는데, 팀의 공격수들이 연이어 부상에 신음하고 이로 인해 강등권에 허덕이자 자기가 직접 경기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실제 텐훌트와의 경기에서 후보 선수에 포함되었고 후반 40분에 교체 선수로 피치에 섰다. 팀은 이 경기에서 4-2로 승리를 거두며 다행히 강등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저지는 헨릭 라르손의 전성기 시절의 소속팀 셀틱의 1999-00 시즌 저지. 사실 해당 시즌은 라르손이 올림피크 리옹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당해 선수 생명에 크나큰 위험을 받은 시기였다. 하지만 라르손은 불굴의 의지로 멋지게 7개월 만에 재활에 성공해냈고, 30대에도 준히 자신의 전성기를 이어가며 셀틱을 스코틀랜드 최고의 명문팀으로 만들었다. 빅리그에서의 활약이 없던 그는 자신의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자 바르셀로나와 임대 선수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그 실력을 증명하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언제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히려 답을 찾아내고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선수 시절의 모습을 보면, 코치 시절의 ‘답답해서 내가 뛴다.’ 의 시전은 ‘팀이 위험하니 나라도 뛴다.’ 라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
스타플레이어라는 것은 스타 감독이 되는 데에 양날의 검인 듯하다. 숱한 화제와 관심, 때론 흥행을 몰고 올 수도 있지만, 지대한 관심과 기대만큼이나 그 능력을 증명해내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후폭풍이 거세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가 스타였던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 아니겠나. 인내심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을 통해 무엇보다 슬기롭게 자신들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많은 축구 감독들을 응원한다. 아. 선수출신 뿐 아니라 정말 많은 노력을 하는 비선수출신 감독도 포함해서 세상에서 가장 스트레스 많은 직업 중 하나라는 스포츠 감독을 감당하는 모두에게 응원을.
글 – 정인천 에디터 (@jeongincheon)
사진 – @Over_The_Pitch
Football, Culture, Life – Over The Pitch
© 2019 Copyright over the pitc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