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LOG │ ep.12 엄마가 사준 첫 번째 저지
(실제로 내가 이 저지를 입고 중1 때 찍었었던 사진이다. 난 지금이나 저때나 저지를 항상 입어왔고 그게 자연스럽게 오버더피치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아마 이 날은 소풍날이었다)
개인적으로 레알마드리드의 0203 시즌 저지를 좋아한다. 이유는 내가 본격적으로 유럽 축구를 즐기기 시작한 시즌이고 또 호나우두가 레알로 간 첫 시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나우두가 프로 생활에선 처음으로 11번을 달았던 시즌인데 그 모습이 특이하기도 하고 꽤 멋졌기 때문이다.
그 이유 때문에 0203 시즌 저지는 여러 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저지는 바로 이 챔피언스리그 버전 저지이다.
많은 축구팬들한테 알려진 대로 호나우두가 거의 유일하게 없는 타이틀이라 하면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이다. 유독 챔피언스리그와 운이 없었다. 또 호나우두를 저평가하는 팬들의 단골 소재가 호나우두의 챔피언스리그 기록일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경기가 있다.
때는 내가 중학교 때 수련회를 갔던 날이었다. 왜 하필 챔피언스리그 8강 날에 수련회를 가는 것인가 하는 불만으로 가득했다. 더욱이 그 이유는 레알과 맨유의 경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은 세계 최고의 인기, 실력을 갖춘 구단으로 많이 미디어의 노출되어 있었고 심지어 펩시는 두 팀을 주제로 광고를 만들기도 했었다. 근데 그 두 팀이 실제로 챔피언스리그에서 만난 것이었다.
이 경기에 수련회에 간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경기를 생방송으로 보려고 끝없이 노력했지만 결국 수련회에서 실패하고 집에 돌아와 풀경기를 재방송으로 봤다. 몰래 수련회 방의 티비를 켜보기도, 수련회 교사들에게 제발 보여달라고 조르기도 했었다. 결국 생방송은 실패했지만, 훗날 이 경기는 내가 풀경기 영상을 다시 본 경기 중 가장 많이 본 경기가 되었다.
먼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호나우두는 3번의 슈팅으로 3번의 골을 만들었고, 적진 올드 트래포드의 팬들이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그 경기의 평점은 10점이었다. 첫 번째 골이 들어갈 당시의 홈 관중들의 적막과 교체 당시의 기립 박수는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경기 결과는 3:4로 패배했지만 레알마드리드가 1차전 경기 결과까지 더해 4강에 진출했고 호나우두가 기록한 이 3골이 절대적인 공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호나우두의 3골이 없었다면 레알은 4강에 갈 수 없었다. (당시 베컴이 후반부에 나와 프리킥 골을 넣은 것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이런 전율이 느껴지는 경기를 보고 이 저지를 안 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이 저지를 사기엔 수중에 충분한 돈이 없었다. 그 때문에 당장 사지 못하고 있었다.
(이 두벌의 저지는 호나우두 팬이라면 안 갖고 있어서는 안될 저지들이다.)
그 당시 어머니께 이 경기에 대해, 호나우두의 위대함에 대해 집에서도 떠들고 다녔다. 그 지루한 설교가 지루하셨는지 아니면 그의 위대함에 감동한 것인지 어머니가 문득, “그래서 그게 얼만데?”라고 물으셨고 “그래 이거 지금 안 사면 나중에 못 살 거 아냐, 하나 사 아빠한텐 비밀이다.” 그렇게 이 저지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때 그대로 지금까지 갖고 있게 되었다. (물론 어머니께 사달라고 티 내려고 이야기하고 다녔던 건 아니었다. 평소에도 난 어머니께 호나우두 이야기를 자주 했고 어머니는 심지어 잘 들어주셨다.)
저지 컬렉션 문화는 엔티크 문화와 비슷해서 어느 날 내 손을 떠나기도 하고 떠났다가 나중에 다시 사고 싶은 마음이 들어 같은 저지를 다시 사기도 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서 디자인은 같은 모델이어도 같은 녀석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도 한때 이것저것 저지를 팔던 때가 있었다. 당시엔 나름의 급전이 필요하여 팔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되는 떠나간 저지들이 많다.
그때 팔지 않았다면 나의 역사가 될 저지들이 더 많았을 것을.
하지만 이 저지는 이런 엄마와의 추억이 있어서인지 여전히 중학생 때 산 그때 그 저지이고 그때 그 상태 그대로이다. 상태를 보면 느껴지겠지만 정말 많이 입고 다녔었다. 그리고 중학생이던 나의 몸에 딱 맞는 그 사이즈 그대로이다. 지금으로써는 상상하지 못할 M 사이즈.
안타까운 건 시간이 오래 흐르다 보니 마킹이 갈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흰색 저지이다 보니 색도 바래지고 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저지도 세월 앞에선 한낱 옷이기 때문이다. 마음 아파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넘버링 마킹은 정말 많이 상했다. 갈라지고 있어 더 이상은 입어주면 안될 것 같은 상태다)
어머니가 내 축구 이야기에 지루하셨는지라고 위에선 농담처럼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어머니는 항상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담아 들어주셨고 내 관심사를 존중해주셨었다.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나의 수집에 대해서 가장 응원해 주시는 분이다. 어머니의 그런 배려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이어온 내 인생과 직업에 큰 영향을 끼친 내 인생의 최대 재미인 수집이라는 것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 나에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 흔한 보습학원도 난 학창 시절 다니지 않았다. 지금의 직업도 내 마음대로 한다고 했을 때 그냥 놔두셨던 분이다.
정말로 감사하다. 진정으로 자식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도록 항상 지켜봐 주셨기에.
이처럼 이 저지는 어머니가 나에게 사준 첫 번째 저지이자 내 인생의 가장 큰 감명을 준 경기와 연관되어 있는 저지이다. 큰 추억이 깃든 저지다.
앞으로도 난 이 저지를 평생 갖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지금까지도 내가 처음 신었던, 지금은 낡을 대로 낡아 삭은 내 생의 첫 번째 꼬까신을 소중히 갖고 계신 것처럼.
(내가 감명받은 그 호나우두의 3샷 3킬 경기는 어웨이 저지를 입고 뛴 경기였다. 하지만 당시엔 어웨이가 구하기 힘들어 홈을 사주셨었다. 어웨이는 당연하게도 수집하여야 했기에 그 이후 어른이 된 이후 소장하게 되었다.)
(운동할 때도 입고 평소에도 입고 정말로 많이 입었다. 이 사진도 중1 때 공차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홈 저지는 앞 쪽 스폰서 마킹도 갈라졌다. 반면에 어웨이 저지는 아직 멀쩡한 마킹 상태이다)
(하도 많이 입어 목부분이 노랗게 변색되었다. 흰색 저지들의 고질병이라면 고질병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 하긴 벌써 15년도 더 된 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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